리버플FC
리버풀 FC는 잉글랜드 리버풀을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 클럽으로, 1892년에 설립
되었습니다. 클럽의 상징 색상은 빨간색이며, 홈 구장은 안필드입니다.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 FA컵, UEFA 챔피언스리그 등에서 많은 우승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럽 중 하나입니다.
리버풀의 팬들은 “You’ll Never Walk Alone”이라는 찬송가를 부르며, 팀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여줍니다. 클럽의 역사에는 많은 전설적인 선수들과 감독들이
있었으며, 현재도 국내외에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리버풀 FC는 영국잉글랜드머지사이드 주의 리버풀을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
구단이다. 잉글랜드프리미어 리그에 소속되어 있으며, 홈구장은 안필드다.
잉글랜드 1부 리그 누적 최다 승점 및 승리 구단이자, 잉글랜드 구단 중 가장 많은
우승 경력 및 가장 많은 메이저 트로피를 소유하고 있으며, 자국 내 모든 유럽 대항전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했다. 특히 잉글랜드 구단 중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우승
구단이자 역대 챔피언스 리그 통산 우승 3위의 구단으로서, 잉글랜드에서 유일하게
빅 이어를 영구 소장한 구단임과 동시에 자국 유일의 UEFA 배지 오브 오너 획득 구단이다.
1892년에 창단되어 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케니 달글리시 재임기에
붉은 제국이라 불리는 압도적인 전성기를 보내면서 잉글랜드를 넘어 유럽 최정상급
클럽으로 그 명성을 알렸으며, 21세기에는 라파엘 베니테스, 위르겐 클롭 재임기에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라 칭해지는 이스탄불의 기적과 안필드의 기적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전성기를 구축했다.
리버플FC의 역사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빛나는 역사를 보유한 구단 중 하나이자 유럽 축구사에서도
굵직한 족적을 남긴 명문 구단 중 하나로, 1960년대 이후 1990년대에 진입하기 이전까지
붉은 제국이라 불리는 장대한 전성기를 보내며 잉글랜드를 넘어 전 유럽에 그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영광스러운 전성기 전후로 긴 부침의 시간 또한 보낸 바 있는 등, 꽤나
굴곡진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구단이기도 하다.
1892년 창단된 리버풀은 잉글랜드에서 다섯 번째로 리그 우승을 경험한 구단으로
이름을 알리며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과 전간기에 총 4회의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일찍이 잉글랜드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5번째 우승을 끝으로 급격한 하락세를 타며 2부 리그로의 강등을 경험했고,
오랜 좌절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던 1959년 빌 샹클리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부터
구단은 첫 번째 암흑기를 끝내고 전성기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샹클리는 침체된 팀을
재정비하고 개혁한 끝에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팀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될
기반을 닦았다. 샹클리는 구단의 인프라에서부터 정체성까지 모든 부분에 영향력을
발휘했고 15년에 걸쳐 리버풀을 잉글랜드 최고의 구단으로 탈바꿈시켰다. 승격 이후
3회의 1부 리그 우승과 첫 유럽 대항전 우승인 UEFA 컵을 들어올린 샹클리가 명예롭게
은퇴한 뒤에는, 샹클리를 보조했던 수석 코치 밥 페이즐리에게 감독직 바통이 넘어갔다.
페이즐리는 전임 감독보다 팀을 더 성공적으로 이끌며 잉글랜드를 넘어 유럽을
호령하는 팀을 구축했고, 본격적인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기 시작했다.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대 중반 ~ 1980년대 중반, 페이즐리의 리버풀은 케니 달글리시,
이안 러쉬 그리고 그레이엄 수네스를 앞세운 화끈한 공격축구로 6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빅 이어를 비롯해 20개의 트로피를 따내며 유럽과 잉글랜드를 평정했다.
잉글랜드를 넘어 유럽을 붉게 물들였다고 해서 붙여진 붉은 제국이라는 별칭이
이때의 리버풀을 대변했다. 이후 후임 감독인 조 페이건과 선수에서 곧바로 감독이
된 케니 달글리시도 좋은 성적들을 거두며 헤이젤 참사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무대 내 리버풀의 전성기는 매우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1989년 일어난 힐스버러 참사로 구단의 운명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참사로
인한 충격과 후유증으로 달글리시가 감독직을 사임했으며, 18번째 리그 우승이 추가된
1990년 이후로 리버풀은 급격히 전력을 잃기 시작했다. 97명의 축구팬들이 비극적인
사고로 운명한 이 사고는 선수들, 감독, 리버풀 팬들까지 클럽 전체에 거대한 트라우마를
입혔으며, 이 때문에 빌 샹클리 때부터 공들여 만들어 왔던 영광스런 팀이 서서히
무너져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힐스버러 참사가 신호탄[18]이 되어 잉글랜드 1부 리그는
1992년에 프리미어 리그라는 이름으로 개편되었고, 이후 리버풀은 오랜 시간 리그 우승
트로피와 인연을 맺지 못하며 2019-20 시즌 전까지 30년간 18회 우승에 멈춰 있게 되는
긴 침체기를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비록 리그 최정상의 위치에서는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은 침체기 동안
여타 트로피 수집을 멈추지는 않았다. 참사의 영향이 남아있던 90년대에도 리버풀은
1991-92 시즌 FA컵과 1994-95 시즌 EFL컵을 들어올렸으며, 제라르 울리에 감독 시절인
2000-01 시즌에는 FA컵, EFL컵, UEFA 유로파 리그에서 모두 우승하며 한 시즌에 3개의
트로피를 따내기도 하였다. 이후 라파엘 베니테스가 2004-05 시즌에 취임한 뒤로는
4-2-3-1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하여 공수간격을 극단적으로 압축시킨 역습 축구로 돌풍을
일으키며 팀 역사상 5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들어올려 빅 이어를 영구소장하는
클럽으로 뛰어올랐고, 뒤이어 2005-06 시즌 FA컵 우승, 2006-07 시즌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2008-09 시즌 리그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구단의 두 번째 전성기를 베니테즈가 만들 것이라 기대한 팬들의 예상이
무색하게도 리그 2위를 차지한 2009년 이후 리버풀의 성적은 다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이후 베니테즈가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리버풀은 다시 한번 침체기에
돌입하게 되었다. 당시 베니테즈는 확실한 능력을 보여준 명장이었으며 리그 준우승을
만든 팀의 퀄리티도 훌륭했지만 리버풀 침체의 모든 원인은 2007년에 리버풀을 인수한
톰 힉스와 조지 질레트 주니어, 두 구단주에게 있었다. 당시 힉스와 질레트는 대출을
통해 리버풀은 인수한 이후, 2008년 세계 경제가 대침체를 맞자 자신들의 실속만을
챙기는 운영으로 일관하기 시작했고 베니테즈에게 약속한 투자를 이행하지 않았던 것.
이에 구단의 미래는 불투명해졌고, 다른 빅클럽들 대비 얇은 스쿼드에서 오히려 팀의
주축들이 이탈하기 시작하며 구단은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2010년에 구단은
존 헨리가 이끄는 FSG[19]에 인수되며 위기를 일단락할 수 있었으나, 팀의 전력은 쉽게
회복되지 못하여 베니테즈 감독 이후 로이 호지슨, 케니 달글리시 체제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부진을 겪었고 프리미어 리그 빅4의 위상에서 벗어난 본격적인 암흑기를
거치게 되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달글리시가 2012년에 EFL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무관의 기간이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달글리시 이후 부임한 브렌던 로저스[20] 역시 루이스 수아레스를 앞세운 공격축구로
2013-14 시즌에 반짝 돌풍을 일으켰지만 84점으로 리그 2위를 기록하며 비원의 리그
우승에는 결국 실패했고, 그 다음 시즌에 이적한 수아레스의 공백을 이겨내지 못하며
암흑기를 끊어내지 못하고 경질되었다. 이에 리버풀의 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불안이 터져나왔으나 위르겐 클롭 감독이 부임하며 리버풀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클롭은 게겐 프레싱을 기반으로 한 빠르고 역동적인 압박축구를
팀에 이식하였고, 지난 수 년간 리버풀을 괴롭혔던 암흑기를 완전히 청산하며 챔스권에
복귀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특히 클롭의 리버풀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2017-18 시즌
이후로는 탄탄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더 나아가 강력한 타이틀 컨텐더로 급부상하였고,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2019 UEFA 슈퍼컵과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2019-20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까지 차지하며 21세기 리버풀은 붉은 제국 시절
이후 다시금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클롭의 리버풀은 2021-22 시즌
EFL컵과 FA컵 우승을 휩쓸었으며 2022년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까지 거머쥐면서 끝내 7개의 주요 대회를 모두 제패하여,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능한 모든 메이저 트로피를 석권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또한 클롭 하에서 리버풀은 숙원 사업이었던 안필드의 증축과 1군-유소년 통합 훈련장 AXA 트레이닝 센터의 개장을 완료하는 등 인프라 확충에서도 발군의 성과를 보였으며, 성적과 구단 체급을 원 궤도에 올려놓으며 다시금 세계 최상위급 구단의 반열에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2024-25 시즌 클롭이 EFL컵 우승을 마지막으로 구단을 떠나게 되면서 불안함과 기대를 동시에 가지게 하는 새시대의 국면을 맞이하는 중이다.
종합하여, 리버풀의 역사를 돌아보면 일찍이 잉글랜드 리그 최강자의 위치에 올라 오래간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구단이었던 것은 물론, 리그 내의 빅클럽들, 특히 2010년대 이후의 빅6 중 유럽 무대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는 구단이라고 할 수 있다.
붉은 제국 시절 일찍이 수 차례 빅 이어를 들어올리며 잉글랜드에서 유일하게 장기간 연속해서 유럽을 호령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특히나 침체기였던 2000년대에도 리버풀은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준우승 1회를 비롯하여 준결승에 1회, 8강에 1회씩 진출하여 존재감을 드러냈고, 유로파 리그 우승과 슈퍼컵 우승도 착실하게 추가해내는 등 유럽 대항전에서 굵직한 성적을 만들었다.또한 위르겐 클롭이 부임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이후에도 특히나 유럽 대항전에서의 강세는 두드러졌는데, 클롭이 시즌 중 부임했던 2015-16 시즌 리버풀은 완성이 덜 된 멤버들만 가지고도 유로파 리그 결승에 올랐으며 2017-18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 토너먼트에서 그 시즌 프리미어리그 생태계 포식자였던 맨체스터 시티를 맞아 홈, 원정에서 모두 승리하고 4강에 진출한 뒤 결승전에까지 올라갔다. 결국 리버풀은 2018-19 시즌에 또 다시 챔스 결승에 올라 토트넘을 2-0으로 꺾고 팀 역사상 6번째 빅 이어를 들어올리는 영광을 누린 이후 슈퍼컵 또한 제패하기에 이르렀고, 2021-22 시즌에는 다시금 챔피언스 리그 결승까지 진출했다.
이에 리버풀은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6회,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3회, UEFA 슈퍼컵 우승 4회로 잉글랜드 내에선 독보적인 유럽 대항전 성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출전한 적이 없는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를 제외하면 모든 유럽 대항전에서 잉글랜드 내 최다 우승의 영예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