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의 초국가적 영향력
마이클 조던이라는 상품 기호는 전적으로 미국 국경 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나이키와 NBA가 국제 시장으로의 확장을 통해 수익성 증대를 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던의 이미지 역시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따라서 나이키 NBA · 코카콜라 · 맥도널드가 그렇듯이, 조던 또한 미국적 상품 기호 가운데 하나로서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며 특히 미국 및 초국적 미디어 재벌들을 매개로 하여 흥행된다. 날이 갈수록 글로벌화(사실상 미국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수많은 국가들이 각각의 지역적 맥락에 따라 미국적 상품 기호에 접근하는 진행형의 과정에 휘말리고 있다.
다양한 지역적 ·국가적 맥락에서 조던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에는 미국적 상품 제국주의라는 단선적인 개념화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과정이 뒤엉켜있다(앤드루스 외 1996). 뉴질랜드, 폴란드, 영국 흑인 사회와 같은 오늘날의 다양한 공간과 맥락에서 조던이 수용되는 데에는 해당 지역의 문화가 유동적인 의미를 포함하면서 “글로벌한 것들과의 관계에 의해, 그리고 그러한 관계를 통해 구축되는 상관적 공간(relational space)”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 숨어 있다. 따라서 조던과 같은 미국적 상품 기호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지역 문화에 대한 초국가적 영향력을 조망하면서, 그것이 가진 의미가 일련의 다양한 국가적 맥락에서 수용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뉴질랜드의 대중적 상상계 내부에 조던과 NBA가 현존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각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과는 본질상 동떨어진 아이콘 기술(iconography)상의 미국 중심성이 확대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잭슨과 앤드루스 1996). 거부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던이 폴란드에서 대체로 긍정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점은 폴란드인들의 뿌리 깊은, 그리고 공산 지배의 붕괴 이후 더욱 고조된 미국에 대한 열광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영국 흑인들은 조던의 성공을 미국 선수의 성공이 아닌, 상징적으로 백인 우월성을 투영하는 이념이나 실제에 반하는 흑인 선수의 성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앤드루스 외 1996).
뉴질랜드에서는 NBA나 조던에 절합된 지배적 의미가 글래머, 부 혹은 노골적인 상업주의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즉, 마이클 조던은 미국과 미국적 차이를 나타내는 기표로서 의미상 할리우드 영화와 유사하다. 그러나 뉴질랜드 문화와는 다른 조던의 미국적 차이는 다수의 지역 스포츠 문화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활성화시키기도 한다. 다시 말해, 탈식민 시대의 뉴질랜드에 미국적 상품 기호를 확산시키는 것과 똑같은 글로벌한 힘이 다른 한편으로는 럭비 연합이나 럭비 연맹과 같은 토착 스포츠에 “뉴질랜드성”의 기표로서 상업성과 범세계적인 수출 경쟁력을 부여하기도 하는 것이다(앤드루스 외 1996).
오랫동안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아온 폴란드인들에게는 마이클 조던과 같은 미국적인 기표들이 또 다른 일련의 복잡한 문화적 의미들로 다가온다. 1989년 공산주의 붕괴는 소비 문화의 성장과 미국적 상품 기호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문화적·정치적·경제적 변천 과정에서도 개인적 쾌락을 추구하는 경향을 통해, 자유화 이데올로기와 미국이 맺은 긴밀한 대응 관계는 계속 유지되었다. 이와 같은 서술 관계에 대항하여, 미국 자본주의의 천박한 소비향락주의에 따른 폴란드 문화의 타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폴란드 의회에서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반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특히 폴란드 젊은이들은 미국적 상품 기호와 개인적 자유 및 여가의 추구를 연결짓는 거부할 수 없는 이미지들로 가득 찬 미국적 상품 문화라는 그림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 내리려 한다. 따라서 미국적 개인주의, 자유, 경쟁 등을 암시하는 조던의 이미지는 공산주의 이후의 일상 생활에서 폴란드인들이 부딪히는 현실적인 관심사와 날카롭게 대립한다(앤드루스 외 1996).
한편, 탈식민 시대의 영국 흑인이라는 맥락 안에서 조던이 수용되는 바를 밝혀 내기 위해서는 단순히 “국가적인” 인식의 틀을 넘어 초국가적 공간에 대한 탐구로 옮아가야 할 필요성이 대두한다. 그러므로 조던은 흑인 디아스포라에 포괄되는 많은 흑인 스포츠 스타 가운데 한 명으로 파악해야 한다. 현존 디아스포라 관념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외연을 확대하려는 시도로서 폴길로이(1996, p.22)는 서구 흑인(the Black Atlantic)을 가리켜 “다양한 흑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친화성 또는 ‘감정의 정체성(identity of passions)’을 뒷받침하는 탈영토화되고 다면적이며 반국가적 근거”라 표현했다. 이에 따르면, 조던 역시 이미지는 여러 국가들 사이를 오가지만 흑인의 성취를 나타내는 상징으로서의 의미는 국가적 경계를 초월하는 수많은 흑인 남성 스포츠 스타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하다. 백인 우월성과 백인 패권이라는 맥락에서 조던은 저항적인 문화적 인간형으로 기능한다(앤드루스 외 1996).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마이클 조던의 의미에 대한 모든 논의는 특정한 지역적·초국가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확장에 정치적·문화적 권력이 개입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이 과정을 단순히 미국에 의한 동질화 기도의 일환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영국 흑인 · 폴란드 인·뉴질랜드 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마이클 조던과 같은 미국적 상품 기호들은 결코 다양한 역사와 지리적 배경에서 획일적으로 수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던이 미국의 기표들이 유통되는 글로벌한 세계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 같은 초국가적 기업 재현물들은 서로 다른 지역적 공간과 역사적 맥락에서 각각의 사람들에게 매우 다른 의미를 띤다(앤드루스 외 1996).
조던, 스포츠 명사성 그리고 문화 비평에 관한 결론
우리는 마이클 조던이 다양하고 복잡한 대중 문화 속에서 고정되고 단일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 바 있다. 요컨대 조던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 서로 다른 역사적 계기에서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의미를 띠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이클 조던 같은 유명 스포츠 스타가 지닌 여러 가지 상호 경합하는 의미들을 인식하고 명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명 선수가 복잡한 권력의 모체 속에 묻혀 있는 양상에 대한 문제 제기 또한 필수적이다. 조던 현상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실제 · 관념 · 이미지 · 기호·지식들은 조직화된 형태로 특정한 이익을 생산·재생산해 왔다. 따라서 세심한 연구를 통해, 마이클 조던의 특정한 측면 또는 특정한 버전이 공표·수용되며 “으레 그런 것”으로 당연시됨에 따라 이익을 얻는 쪽이 누구인가를 밝혀내야만 한다. 탈근대적 유명 인사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패권적인 힘에 의해 은폐되고 흩어져 있을 수 있는 사실들을 밝혀 내기 위해, 매개된 담론들에 대한 비판적 개입을 북돋우는 지식 유형들을 개발하는 것이어야 한다(맥도널드와 버렐 1999).
이상과 같이 마이클 조던이 누리는 보편적 인기에 개입한 이유는 조던 현상을 떠받치고 있는 정서적 이념적 지주들을 폭로하여 그저 마이클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을 문제시하고 대안적 관점을 창출하려는 데 있다. 실제로 구체적 재현물들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조던의 초실재적 이미지가 낳은 지배적 구축물은 하나의 상으로 우선시되는 흑인 남성성 혹은 정체성을 재현하며, 이러한 상은 다른 모든 타자들을 재는 잣대가 된다. 저항적 전유의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조던 초신화(jordan hyper-nmythology)는 너무나도 자주 가혹한 현실과 공고히 뿌리 박은 세계적·인종적·성적 불평등을 은폐해왔다. 조던 현상에 대한 문화 비평에서 우리가 목표한 바는 무해한 인격적 외피(personal investment)처럼 보이는 것들의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어떻게 권력과 특권이 스포츠 유명 인사들을 통해 생산되는가를 파헤치는 비평가의 작업을 진전시키는 데 있다. 끝으로 우리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탈근대적 문화와 스포츠 명사 내부에서 작동중인 정치적 이해 관계를 구별해 냄으로써, 이에 대한 집단적 반대와 문화적 변화를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